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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과 죽음

> 몰입은 죽음의 공포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죽음의 공포

죽음의 공포는 무엇인가. 여기서는 사람처럼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닌 존재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상상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공포를 말한다. 물리적인 위협을 받았을때 느끼는 생존본능과는 다르게 구분하고 있다. 숲길을 걷다 맹수를 만나서 느끼는 두려움은 생존본능이고, 언젠가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상상함으로써 느끼는 두려움은 죽음의 공포이다.


죽음의 공포와 일반적인 공포

여기서 죽음의 공포는 일반적인 공포로 치환해서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요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느끼는 두려운 감정을 공포라고 정의 한다면 치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격으로 죽음의 공포를 꼽은 것이지만, 무엇으로부터 공포를 느끼는지는 다를 수 있다. 매번 죽음에 대해 인식하고 사는 이는 극히 적을 것 이다.


몰입

몰입은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인지하지 못한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현재에 몰두하는 경험을 말한다. 덧붙이자면 지속가능한 몰입과 그렇지 않은 몰입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몰입은 성장을 동반한다. 그렇지 않은 몰입은 자괴감과 후회를 동반한다.


몰입은 두 가지 관점에서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는데 유용하다.


죽음의 망각

몰입을 하는 동안은 죽음을 느끼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과 맞닿아있다. 몰입하는 동안은 몰입의 대상만 존재한다.


다만 지속가능 하지 않은 몰입을 할 수록, 몰입하고 있지 않은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진다. 몰입함으로써 죽음을 망각할 뿐이고,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몰입이라면, 죽음초월의 가능성을 느낌으로써 서서히 죽음의 공포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


죽음초월

영혼의 불멸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죽음을 삶의 전부라고 보지 않고, 그 이상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얻음으로써 죽음을 초월한다.


죽음초월의 가능성

지속가능한 몰입을 반복하다보면, 몰입을 통해 죽음을 초월할 방법을 찾고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얻는다.


예를 들어 명상을 통해 우주와의 합일을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다. 이를 이룬 위대한 성인들은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였으므로, 나또한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막연한 희망을 말한다.


무언가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확신한다면, 애초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도 않으리라. 몰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고양감을 얻어, 미약했던 희망에 불을 조금씩 지펴나가다 확신으로 변모하는 것이 아닐까.


한계

죽음초월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면, 몰입은 공포에 대해서 망각의 역할만 수행한다.


셀프 피드백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공포라는 단어를 꺼내고, 공포라는 단어를 설명하려면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꺼내고 만다. 몰입과 몰두도 마찬가지이다. 남자는 남성이다와 같은 설명처럼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두 단어를 다른 의미라고 정의하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만 사용하는게 분명한 글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더 낫다.